<공정여행 수기공모전 최우수작>

행동하는 용기, 연대가 만들어가는 변화_ 그리고 여행...

 


글_2010년 필리핀 공정여행 1차 참가자 신소예



 

旅行(여행):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객지로 나다니는 일 

公正(공정): 공평하고 올바름


  공정여행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나에게 제일 먼저 다가왔던 이미지는 이 두 사전적 의미의 조합이 주는 교과서적인 딱딱함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기야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당시는 ‘공정무역’이라는 대안적 무역 방식의 취지에 공감하여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하게 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니, 나에게 있어 ‘공정’이란 접두어가 붙은 이 새로운 개념이 살아있는 감정이 되어 내 가슴에 꽂히게 되는 데 무리가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과 무려 14시간의 시차가 나는 이곳 남미 콜롬비아에서 낯섦과 외로움과 싸우면서도 매주 이메일로 날아오는 공감만세의 공정여행 letter에 2년 전 그 여행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을 보면 역시 그때의 그 시간들은 나에게 단순한 ‘바깥 여행 또는 일탈’은 아니었음이라.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 아시안 브릿지 숙소에서 모두가 모여 던졌던 첫 번째 질문은 ‘각자에게 있어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내가 알고 있고,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에 대한 낯선 느낌의 직면, 그것을 낳은 여행지에서의 ‘다름’을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여행에 돌아와서 다시금 돌이켜보건대 나에게 있어 이 여행은 ‘다름’과 더불어 만국을 꿰는 ‘동질성’을 깨닫는 것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다시금 나의 좁은 시야에 그때, 그곳, 그 사람들과 함께이지 않았으면 하지 못했을 풍족한 ‘확장’을 이루고 왔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배우고 왔거나 내 삶의 가치관과 방식을 단숨에 바꿀 정도의 ‘충격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극적인 시나리오’를 기대하지도 않았고 또 그런 내 바람에 잘 응답해주었던 이 여행이, 나는 오히려 더 고마웠다. 역사적 변동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변화들의 축적일 것이매 하물며 한 사람의 인생관과 행동이 어찌 짧은 기간의 경험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사전적 조합 덩어리’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무지의 나를 깨고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행했던 것들에 대해 이제 한 번쯤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아직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젊은’ 나 자신의 ‘선한 변화의 가능성’을 점쳐보기에, 좋은 시발점이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여행이 단순히 ‘소비’가 되지 않고 ‘관계’가 될 수 있다는 대안적 고민은 관광 수입으로 국부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는 개발도상국에게는 시간이 지나도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을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 형태를 모색한다는 점에 있어서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사람의 여행 비용 중 대부분이 항공료로 빠져나가고 겨우 20% 정도만 그 지역사회에 돌아간다는 통계는 상당히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는 대부분의 산업이 거대 다국적 기업이나 외국의 투자 자본으로 잠식된 필리핀에서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하는 내내 되도록 현지인이 이용하는 식당과 숙소, 교통수단을 이용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끼리만’ 즐기는 배타적 여행을 배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훨씬 현장감을 가질 수 있었고 나에게 있어서는 까무잡잡한 동남아시아 사람들로 대표되는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을 조금이라도 깨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내가 꽤 오랫동안 일했던 아름다운 가게 주변에는 한국인과 결혼한 필리핀 사람과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다른 한국 손님들과 다름없이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묻거나 불만사항을 이야기하고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여 물건을 산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봉사자들은 그들의 생김새와 어눌한 한국어만 듣고는 그들이 최근 도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양 신경을 곤두세우며 상대적으로 ‘풍족한’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은근한 우월감을 즐겼던 것 같다. 깨고 싶어도 쉽게 깨어지지 않는, 내 마음에 뿌리 깊게 박힌 천박한 우쭐함은 필리핀 사람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중한 반성과 부끄러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지의 관습을 존중하고 자연을 보호하자는 공정여행의 원칙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급속히 무너져가는 ‘계단식 논’을 복원하고 사라져가는 ‘뭄바키(제사장) 제전’을 함께 즐기며 축제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그곳 NGO 와 마을 사람들을 돕는 ‘일회성의 도움’이라는 행동으로 끝나지 않고 고민과 토론을 통해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단기 해외 자원봉사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스펙’의 한 줄로 전락해버린 것은 이런 ‘고민의 시간’이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아시아에서 가장 큰 백화점 ‘Mall of Asia’ 와 세계 3대 빈민 지역으로 꼽히는 ‘바세코’가 10km를 사이에 두고 공존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극단적 폐해를 극명히 보여주는 슬픈 그림이다. 마지막 일정으로 이 두 곳을 모두 돌아보면서 우리는 여행 내내 고민했던 질문에 답을 구하게 된다. 수천만 중 겨우 ‘나 하나’가 이런 최악의 사태의 발생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역할이라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행동하는 용기’이다. 공동의 뜻이 연대되어 발휘할 수 있는 변화의 힘을 믿는 것이다. 아이와 여성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상품을 기꺼이 불매하는 것, 지역의 재래시장과 유통구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대형마트의 무분별한 진입을 저지하는 것 등, 현명한 소비자와 시민으로서의 ‘나’의 결심과 행동. 이런 ‘나’들이 만드는 변화 속에서 ‘공정(公正) 함’을 이루어 낼 수 있고, 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내가 12박 13일의 여행에서 함께 고민하고 사색하여 얻은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다.

  마지막 수료식에서 코디네이터 고두환 씨는 공정여행의 ‘즐거운 불편’을 이야기하였다. 그렇다. 여행을 하면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우리는 이제 ‘즐거운 불편’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상에서도 기꺼이 이 ‘즐거운 불편’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다. 나는 이제 ‘개개의 연대가 만들어 내는 변화’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지금 이곳 남미에서 끊을 수 없는 게릴라와의 냉전, 뿌리 깊은 빈부차와 반목, 고질적인 부패 속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 언젠가 ‘변화의 물결’이 이곳에 일어날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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