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으로 꿈 키우기


글_대전반석고등학교 2학년 임은희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나는 6주 동안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때는 호텔 안에서 밥 먹고 아떼(필리핀 어로 나이 많은 여자를 지칭, 가사도우미를 뜻하기도 한다)가 치워주는 방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너무나도 편안한 생활이었다. 주말이면 필리핀 관광지를 여행하는 시간도 있었다. 고급 렌터카를 타고 입맛에 맞는 먹거리로 식사했고, 유명 관광지로 몰려다니곤 했다. 돌이켜보니 그때 우리는 나만 즐거운 여행을 했던 것이다.
  필리핀에 대한 나의 동경은 너무도 간절했다. 그래서 2011년 7월 25일~31일까지 공감만세라는 여행사를 통해 공정여행으로 다시 필리핀을 찾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도 나는 공정여행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캐리어 대신 배낭을 메고 간다는 것에 겁이 났다. 하지만 공정여행이 무엇인지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미리 공부도 하면서 여행 준비를 차분히 해나갔다.
  공정여행이란, 관광객들이 여행 경비를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숙소에 사용하며, 인권·생명을 존중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여행을 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는 '착한 여행'이다. 자, 그럼 우리들의 공정여행 원칙대로 필리핀 이푸가오 지역으로의 여행을 다 같이 떠나보자.





  공정여행의 원칙 첫 번째 비싼 고급 항공기를 타고 가는 것보단 그 나라의 국적기, 필리핀 항공을 이용하였다. 필리핀항공은 앞뒤 간격도 좁고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책상에 누워서 자기도 해보고 옆으로도 자기도 해봤지만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도 자국 기를 이용함으로써 고용 창출을 한다는 그 의미를 알면 몇 시간 동안은 충분히 감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도착 후,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필리핀 사람이 운영하는 렌터카를 타고 가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500m 간격으로 보이는 졸리비, 유치원생 정도 되어 보이는 동생들이 맨발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필리핀 국립대학에서 운영하는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아침에 숙소에서 차려준 밥을 먹고 오늘의 일정을 들으면서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호텔에 대해서 들었다. 이 호텔 수익금은 돈이 없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한 대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인다고 했다.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 일부도 근로 장학생 형태로 대학생들을 고용한단다. 여행을 가면 항상 최고급 호텔에서 편안하게 묵어야 여행다운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낡고 불편했지만 이윤을 장학금으로 환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이 호텔의 이용객이 많아져서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계단식 논을 복원하기 위해 밤을 새워 바이니난 마을로 달려온 버스에서 내려 보니 새벽 4시, 공정여행의 두 번째 원칙인 현지 주민들과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홈스테이를 하기 위해 집으로 이동했다. 집주인 할머니께서 이푸가오 전통가옥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모두 둘러앉아서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음식을 나눠 먹었다. 필리핀에서 직접 해 먹는 음식의 맛은 달랐다. 식당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고 친근함이 우리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패키지여행 속에서는 단체로 이동하고, 대형 식당에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쇼핑센터를 의무적으로 들리고, 다 같이 호텔로 이동하는 것과는 달리 현지 주민들의 삶 속에 가까이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사하면서 우리는 여행다운 여행 속으로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음날 필리핀 대중교통인 트라이시클(오토바이에 사이드 카를 달아 개조한 교통수단)을 타고 계단식 논을 보기 위해 약 2시간여 트래킹을 했다. 여전히 비는 주룩주룩 오고, 미끄러운 길이었지만 공정여행의 세 번째 원칙 여행을 위해 파괴되는 지구와 지역을 복원하는 작업에 참가하기 위해 당차게 걸었다. 말로만 들었던 계단식 논을 보자마자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트레킹 내내 힘든 줄 모르고 우리는 계단식 논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태풍으로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는 계단식 논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돌덩이들을 나르고, 한 줄씩 둑을 쌓고, 그 둑이 무너지지 않게 발로 밟아주는 과정을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 식사를 할 때에는 전통방식 대로 방아를 찧고, 쌀을 볶은 뒤, 바나나 나무껍질을 접시 삼아 이푸가오족 전통 음식을 먹었다. 말이 계단식 논의 복원이지 제대로 된 복원 활동을 과연 했을까? 우리가 도움은커녕, 일을 더 만들고 온 것이 아닌가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공정여행을 통해 그들의 무너져 가는 논을 복원하려는 우리의 진심 어린 마음이 전해졌길 바랄 뿐이었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축제를 열어주었고, 나를 비롯한 여행 참가자 모두는 그 축제의 분위기 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여정은 필리핀의 대중교통인 지프니(미군의 지프를 개조해서 만든 교통수단)를 타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바나우에 계단식 논을 보는 것이었다. 녹색 계단을 지나치며 필리핀 지폐 1000페소 뒷면에 있는 세계 8대 불가사의인 계단식 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나우에 계단식 논에 도착했다. 지금껏 본 것 중에 가장 경치가 아름다웠다. 몇 천 년 동안 맨손으로 계단식 논을 일구어 온 이푸가오족의 놀라운 삶이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관광객에 의해 파괴되고 인위적으로 변하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명성에서 이제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나우에 계단식 논이 많은 관광객에 의해 파괴되고 있지만 '시트모'와 함께 우리와 같은 바른 인식을 가진 여행가로 인해 더 이상 계단식 논이 훼손되는 일이 없길 바랐다.



  바나우에 수공예 거리에서 공정여행의 네 번째 원칙인 지역의 생산품을 소비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공익성을 도모하기 위해 수공예품 거리에서 쇼핑을 했다. 맛있는 간식과 가족들을 위해 줄 선물을 구입하며 정신없이 쇼핑을 즐겼다. 이 수공예품 거리에서 수공예품을 판매한 수익은 현지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위해 쓰인다는 여행사 대표님의 설명을 듣고 마음껏 쇼핑을 할 수 있었다. 여행이 마무리되면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우리는 같이 여행 간 친구들과 남은 페소를 모아 여행사에서 지원하는 바세코 공부방 동생들을 위해 기부를 하기로 했다. 우리 돈 오만 원 정도면 6개월간 공부방에서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남은 페소가 모아져서 한 명의 동생이 우리와 같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랐는데, 다행히도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었다. 우리와 필리핀 친구들이 공부를 하면서 꿈을 키워간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공감만세 대표 고두환 선생님과 짧은 대화를 했다. 고두환 선생님의 소망은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정여행을 하게 되어서 자기 회사가 망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많이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정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나부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평소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걷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많은 기업가들은 회사를 키우기 위해 나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 구분 안 하면서 돈 벌기에 바쁜데, 회사를 더 키우고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보다 수익이 나는 대로 여행지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 공정여행을 가기 전 나의 꿈은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해서 명품을 두르고 다니는 커리어 우먼이 되는 것이었다. 여행사 대표와의 이야기 중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공정여행을 떠나는 날이 오면 발전적 해체가 이 기업의 목표라는 말을 듣고 몸이 짜릿했다. 자신의 삶을 살찌우기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말을 기대했는데, 발전적 해체라니? 이번 공정여행을 통해 나도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적 기업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고, 몇 년 뒤에 공감만세와 어깨를 나란히 할 건강한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말 것이라는 결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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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지구와 지역이 미소짓는, 고민하고 상상하고 배우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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