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라이스 테라스 복원을 다녀와서




글_필리핀 공정여행 참가자 김기덕




   요즘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식이 나날이 높아지면서 공정무역, 공정여행이라는 소리도 간간이 듣게 된다. 예를 들면 뉴스에서 공정여행을 소개하는가 하면, 고등학생 모의고사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문제가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에 반해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정여행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공정여행을 직접 체험해 본 사람으로서 내 경험들을 나누고, 공정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고자 한다.



   자, 사람들이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 여행의 목적? 새로운 만남? 뻔한 대답 말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바로 돈이다. 항공사도 싼 곳을 선호하고, 싸게 무엇을 먹었는지, 또 저렴하게 무엇을 샀는지, 이런 것들을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돈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쓰려고 애쓴다. 여기서, 그럼 우리가 여행 중에 쓴 돈은 과연 어디로 갈까? 실제로 미국에 한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관광산업이 세계적으로 매년 10~20%씩 성장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이익들 중 현지인에게 돌아가는 몫은 단 1~2%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았고, ‘희망을 여행하라’라는 책에서 네팔의 경우 백만 원 당 오만 원 정도만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렇듯 우리가 여행지에서 돈을 아무리 많이 쓴다 하더라도 결국 그 대부분의 이익은 현지인이 아닌 외국의 다국적 기업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여행이란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이용하고, 현지에서 생산되는 음식을 구입하면서 실질적으로 그곳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그런 착한 여행이다. 쉽게 말해서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는 기업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현지인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난 올해 7월 필리핀으로 공정여행을 갔다 왔다. 학생 12명과 선생님 3명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의 목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라이스 테라스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라이스 테라스란 필리핀 이푸가오 지역에 있는 계단식 논으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또한 바타드 지역의 계단식 논은 세계 3대 배낭여행지 중에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대략 2000여 년 전에 지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이 논은 전부 일자로 펼쳐 놓으면 지구를 반 바퀴 돌릴 수 있을 만큼 길다. 충격적인 것은 이 거대한 규모의 논을 아무런 현대 기술의 도움 없이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곳 바타드에 사는 이푸가오 족들도 자기네 조상들이 이 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모른다고 하였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라이스 테라스는 갑자기 유명세를 치렀고,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발길질에 훼손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복원을 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푸가오 족들도 편한 관광사업에 눈을 돌렸고, 라이스 테라스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심지어 필리핀 정부에서도 관광객들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인위적으로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꾸미면서 사실상 농사가 불가능한 경지에 이른 논도 적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묵었던 산장의 주인이신 Simon 씨에 의하면 이푸가오 족들도 라이스 테라스 복원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정부에서의 지원금과 자원봉사자들이 오기 때문에 그것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외부에 종속당하고 있는 자본 식민지인 셈이다.



  우리 일행이 바타드까지 가는 길은 매우 힘들었다. 냉동 야간버스를 10시간이나 타야 됐고, 필리핀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지프니를 타고 험한 산길을 올랐다. 마지막으로 지프니를 타고 도착한 saddle은 산꼭대기쯤에 위치해있는데, 그곳에서부터 반대쪽 밑인 바타드 마을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최악인 건 그냥 내려가도 꽤 힘든 길을 10Kg 짜리 텐트를 들고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는 것이다. 최종 목적지였던 Simon's Inn (사이먼의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쳐서 다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힘들어서 뻗어 있던 내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라이스 테라스. 뿌연 안갯속에서 아직은 부끄러운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라이스 테라스를 보고 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천 년 간의 세월을 이푸가오 사람들의 희망으로 굳건히 견뎌왔는데, 요 수십 년 사이에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잔혹했다.





  그 다음날 본격적으로 계단식 논 복원 작업에 들어간 우리는 그제야 라이스 테라스의 웅장함과 위엄을 눈앞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라이스 테라스인 만큼 복원 작업도 복잡하고 힘들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간단하고 쉬웠다. 단순히 훼손된 돌담을 허물고 그 돌을 쌓아서 새 돌담을 만드는 것이었다. 정말 답답할 만큼 전통적인 방식으로 논을 복원하는 이푸가오 족 사람들에게서 수천 년의 내공이 느껴졌다. 우리들도 세계적인 유산을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논 복원 작업에 임했다. 사실 처음엔 많이 우왕좌왕하고 손발이 맞지 않아 헤매는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곧 역할을 분배하고 서로 맞추다 보니까 어느새 기계처럼 잘 맞는 우리들이 되어 갔다.



  몇 차례 논 복원을 마치고 며칠간 이곳에 지내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이푸가오 족의 전통 행사에도 참여했고, 이곳 어린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가서 꼬맹이들과 춤도 추면서 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든 생각은, 사람들이 다 순박하고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자기네들이 먹고사는 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일부러 친절을 베푸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항상 웃어주고 도와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고, 문화가 달라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경우도 허다했지만, 아는 데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대하던 그 태도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번 공정여행에서 돌아오기 전 남은 폐소를 모았다. 필리핀 지역에 가난한 아이들이 우리와 같은 꿈을 키우고 밝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자는 데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나 나름대로 한국에 돌아와서도 필리핀 친구들을 위해 기부를 계속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무조건 부모님한테 받는 용돈을 기부하는 것보다도 일상생활에서 내가 쓰는 돈 중에 굳이 안 써도 되는 돈을 아껴서 모은 돈으로 기부를 할 생각이다.





   이번 여행은 또한 나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있었는지, 나 하나만을 위해 미래의 우리 자손들의 자원을 얼마나 많이 빼앗고 있었는지... 내가 단번에 나 자신을 바꾸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나의 좋지 않은 습관들을 하나씩 개선해 나갈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공정여행을 꼭 한번 떠나보면 좋을 것이다. 이런 공정여행으로 현지인의 이익을 독차지하는 부자들로부터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활동에 꼭 동참했으면 한다. 나는 몇 년 뒤 성인이 되면 꼭 한번 이곳을 다시 찾고 싶다. 그 사이 라이스 테라스도 자원봉사자들과 이푸가오 족들에 의해 많이 복원되어 있을 것이다. 라이스 테라스 마지막 계단의 돌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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