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계단식 논’ 복원캠프-공정여행

조성임

 

 

1. 들어서며


   해외, 필리핀, 마닐라, 키앙간, 바나우에, 바타드 등 이곳에 갔다 온 지 열흘밖에 안되었는데 기억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열흘 전만 해도 뇌리 속에 잊히지 않고 계속 떠오를 줄 알았는데 벌써 일상생활에 빠져들어 원래 있었던 나로 또다시 여전하게 살고 있다. 다녀온 소감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열흘을 버티다가 자료집을 읽고 사진을 보며 기억을 억지로 되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때만 “와!” 하는 우리네 사람들의 성향으로 돌아온 나를 보게 되었다.

   한미 FTA나 월드컵, “독도는 우리 땅”에 대해 크게 외쳤다가 다시 다른 일과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는 우리네 모습, 이제는 원래 다 그러려니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천재지변, 재앙, 굶주림, 고아들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불쌍함, 슬픔, 안타까움을 느끼고, 나은 사람들은 형편에 맞는 기부금을 내며 자원봉사를 하고 자신의 일생을 바쳐 운동 등 헌신을 한다. 이런 일을 하는 단체들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나와 같이 현실에 맞추어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한 일들은 TV나 책에서 나오는 역사 책으로 인지되면서 말이다.

   이런 말을 왜 죽 늘어놓고 있는지는 나조차도 아직은 설명이 되지 않지만 이 글을 마무리 지었을 때 즈음이면 내가 무엇을 배우고 의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해가 되리라 생각하고 글을 써 가겠다.


2. 복원 캠프 참여를 알게 되었을 때


   캠프 참여 계기나 설렘은 함께 참여한 자매들과도 계속 나누었었다. 현재 나의 일터인 YMCA에서 운영하는 평송청소년문화센터에서 포장한 단어로 하면 우수사원으로 선정되어 이번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해외여행을 보내줄 것 같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내심 기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인 필리핀이란다. “에이! 그래도 뭐, 필리핀이 어디냐?” “저렴하게 더 많이 누릴 수 있지.” “그런데 이거!!” 캠프 신청서 관련 자료를 받아보니 잘 알지도 못하는 세계문화유산에 거기다 계단식 논 복원 사업이란다. 우리 동네 가면 많은 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며 만들어진 논을 보고 계단식 논이라고 하지 않는가. 거기가 뭐라고 복원 캠프를 하러 간단 말이냐?

   다시 생각의 전환을 한다. 그래도 해외여행 아니냐. 공정여행이든 착한 여행이든 여행은 여행이지 않은가? 비행기는 제주도 갈 때 타봤다만 다른 나라에 가서 내가 외국인이 되어 그네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 아니겠느냐.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격식 있는 말로 하자면 시야를 넓힌다고 하지 않던가? 또 논 복원 사업 즉, 그 나라 어려운 것을 봐주고 복원해 주러 가는 좋은 일하러 가는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여행을 가는 나는 필리핀에 가는 다른 관광객들보다 으스댈 수 있는 것이라고 적어도 출발하기 전까지는 이런 불편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3. 공정여행


   이곳에서 기획한 이번 세계문화유산 복원 캠프의 그 의의를 살펴보면, 인류가 함께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는 세계유산에 대해 직접 복원 작업에 뛰어든다기보다는 체험을 통해 인식하고 고민하여서 그 경험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키는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할 수 있다.

   공정여행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우리가 필리핀에 여행을 갈 때 총 여행 비용이 100만 원이라 하면, 40만 원은 비행기, 20만 원은 여행사에, 우리가 머무는 호텔이나 먹고 마시는 것들, 그리고 사들여 오는 물건들로 거의 대부분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불하는 이러한 금액들이 대부분 외국인 소유나 관광업 관련 회사들에 의해 해외로 빠져나가고 실제로 현지에 남는 돈은 1~2%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기막힌 사실이었다. 이러하니 그 나라가 아무리 관광산업으로 발전하였다 하더라도 임금이 아주 적은 필리핀이란 나라에서는 항상 가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그리하여 공정여행에서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기념품, 대중교통, 재래시장 등 현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재활용 시스템이 없는 필리핀에서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라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여 캠프에 다녀온 후에라도 지구의 깨끗한 환경 만들기에 기여할 수 있는 지구 시민으로 거듭나기를 캠페인 하고자 하였다.

 

 

4. 첫째 날, 캠프여정 시작

 

   필리핀의 마닐라에 새벽 1시경 도착하여 아시안 브릿지 필리핀 지부에서 짐을 푼 우리는 간단한 인사 뒤 바로 잠자리에 들며 첫째 날을 보냈다. 다음날 아시안 브릿지 지부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필리핀에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시안 브릿지와 이번 캠프의 목적 및 의도 등을 소개받았고 이를 통해 세계문화유산 복원 캠프, 비정부기구(NGO)와 비영리조직(NPO), 유네스코(UNESCO) 등 별로 관심 없었던 것들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오후 일정은 세계문화유산의 지정과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와 필리핀 유네스코에 대한 정보 및 계단식 논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유네스코 필리핀 지부를 방문하였다. 그곳은 우리도 많이 들어봤던 몬테소리 학교였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계획은 일정과는 어긋나게  학교 탐방과 별로 소득 없는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우리가 탐방한 이 몬테소리 학교는 우리나라 돈으로 년 500만 원 상당의 학비를 납입하는 필리핀의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였던 것이다. 대학생들이 다니는 것도 아닌 유아에서부터 우리나라의 고등학생 정도까지의 학생들이 다니는 곳으로 학생들은 학습내용별로 입는 옷이 몇 벌이나 될 정도의 재벌 학교였다.

   학교 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았고, 유네스코 지부의 장은 계단식 논에 대한 안타까움과 대책 마련 등에 대해 듣고자 했던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그 지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관광개발 특구가 되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문화 분야에서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고 가치 있는 문화유적의 보존 및 보수 지원활동을 한다는 유네스코가 어떤 의식을 지녔는지의 실제를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몬테소리 학교의 수업방식이 어떠하다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이 부자 학교를 둘러보고 필리핀의 공립학교 상황과 학용품을 살 돈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빈부의 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었다.

   몬테소리학교를 방문한 우리는 계획에 없었다는 학교 탐방에 의아해했지만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들은 필리핀의 국민성을 듣게 되면서 이해가 되었다. 약속과 시간관념이 적은 이들은 약속을 해놓고서도 연락 없이 나오지 않는가 하면 책임감도 부족한 편이라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여유 있게 생각하며 낙천적인 사상과 성격으로 이번과 같이 계획에 없었던 일을 준비해 놓고 자신들에 대해 보여주고 알려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 사람이 “빨리빨리”를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이것을 이들의 한 문화로 여겨야 하는 것이지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5. 둘째 날, 키앙칸의 ‘계단식 논’ 현장으로


   유네스코 방문을 마치고 아시안 브릿지 지부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뒤, 우리는 배낭을 챙겨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 ‘계단식 논’을 만나러 키앙간으로 출발했다. 이곳까지 가는 데는 버스로 10시간 정도 걸렸고 냉방 버스 안에서 잠을 잤다. 여기서 왜 냉방 버스일까? 가난한 나라에서 에어컨이 강풍으로 뿜어져 나오다니! 덥고 습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장시간을 달리는 버스 안의 상황은 추워서 에어컨 나오는 곳을 커튼으로 막고서도 담요를 덮고 있어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는 이들의 의식 문화였다. 이곳 필리핀 사람들의 이와 같은 의식은 뒤에서 다시 한 번 얘기해 보겠다.

   모든 것을 잠시 다 덮어두고, 키앙간을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에는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에서도 보지 못할 만큼의 눈부신 별들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10시간 정도 타고 가야 하는 냉방 버스를 용서하고 다시금 차에 오르는 내 몸을 허락 하리만큼 머릿속에서 다시 그 별빛 광장이 떠오른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한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키앙간의 SITMO에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전에는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의 운영 장인 말론(Malon M. Martin)으로부터의 이곳 SITMO는 어떤 곳인지? 그들이 왜 그들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지에 대해 듣게 되었다. SITMO는 “Save The Ifugao Terraces Movement”의 약자로 “이푸가오의 계단식 논을 지킵니다.” “우리의 유산을 지킵니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활동하는 이들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농촌 살리기에 뛰어든 젊은이들이라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필리핀 국립대학에서 사회정치학을 공부한 말론(Malon M. Martin) 운영 장은 필리핀의 엘리트들이 거의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실에서 관광화로 무너져 가는 계단식 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가였다.

   계단식 논이 세계 8대 불가사의라 불리면서 관광화되었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 좋은 것은 별로 없으며, 이푸가오족의 삶의 뿌리이자 존재 이유였던 계단식 논은 점점 무너지고 있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필리핀의 정부는 힘도 없고 돈도 없는데 돈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은 외국으로 떠나는 현실에서 필리핀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과 자본과 노동력의 부족 탓에 이런 운동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6. 셋째 날, 계단식 논 복원작업 현장 ‘나가카단’


   필리핀 캠프 셋째 날 오후, SITMO 스텝들과 함께 계단식 논 복원작업 현장인 나가카단(Nagacadan)으로 갔다. 이동할 때 다시 지프니(Jeepney)를 타고 가는데 SITMO 스텝들이 우리가 탄 지프니 밖의 뒤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들이 왜 그러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탈 자리가 없어서 일수도 있겠고, 손님에 대한 존중이라는 이 나라 사람들의 의식 때문이라는 것 같기도 했다. 지프니는 우리나라의 경운기를 상상해 보면 되는데 경운기 보다 훨씬 더 강하고 산길도 덜컹거리며 잘 올라가는 필리핀에서는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뒤에 매달리면 돈을 내지 않고 갈 수 있어서 어린아이들까지도 중간에 갑자기 매달려서 타고 가다가 도중에 내리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의 부모님들이 본다면 기겁할 만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생활이었던 것이다. 자리가 없으면 지프니 위에도 타고 가는데 얼마 전에는 지프니 위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밖에 매달린 스텝들이 더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나가카단에 도착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계단식 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광경이었다. 산을 깎아서 어떻게 저런 계단 형식의 논을 일구었는지 그 어마어마한 작품을 보면서 정말 외계인이 했다는 설도 믿어야 할 정도로 놀라웠고 필리핀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복원작업하는 곳으로 가던 중 조그만 바랑가이((barangay)-우리나라의 마을 집단이라 보면 될 것이다.)에서 잠시 멈추어 절구통에 벼 이삭을 넣고 절굿공이로 찧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국민속체험마을에 온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볼 수 있었던 모습을 2010년대에 사는 우리가 이것을 체험해 보며 신기해해야 하는 이곳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기둥 위에 지어진 움막 같은 집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우가 우가” 라 말하는 원시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이들을 불쌍히 여기면 안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자연과 어우러진 이들의 삶을 오히려 동경해야 하는 것이고 이들에게는 다만 편리함만 없을 뿐인 것이다. 우리는 편리함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뒤돌아보지 못함에 미안해해야 하며 동정이 아닌 측은지심이어야 한다.

   계단식 논 복원작업으로 모내기를 해보았는데 우리는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고, 무너져가는 계단식 논 복원 사업에 참여한 의의와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곳의 할머니께서 말했던 것처럼 이곳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시골에서 살아봐서 그런지 모내기를 해본 경험은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네 농촌도 점점 논이 버려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일 뿐이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직접 복원 사업을 한다는 것보다는 체험을 통해 이곳의 상황을 알고 돌아가서 우리네 농촌이나 여기와 비슷한 상황에 대해 젊은이들이 인지하고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인 것과 마찬가지로 필리핀의 물 사용에 대한 제한은 더욱 심각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한 노인이 이를 닦고 세면을 하는 등, 물 한 컵으로 모두 해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그곳에 비하면 이곳은 황송한 것인데도 물을 마구 사용하는 습관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화장실 문화 또한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변기 위에 발을 딛고 올라가 중심을 잡고 일을 본 뒤 물로 해결을 한단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화장지가 제공되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이곳의 화장실이 거북스럽지만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앉은 변기 위에 다시 앉는다는 것이 더 비위생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 적응을 하는 법인가 보다. 처음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거북했는데 이제는 변기를 보고 물바가지를 퍼부어 물을 내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고, 샤워하고 머리 감는데 물 몇 바가지만으로도 다 해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7. 넷째 날, 바타드 마을에 가다.


   넷째 날, 필리핀의 전쟁기념 사당과 이푸가오 박물관을 둘러본 뒤, 바나우에에서 새들까지 지프니를 타고 계속 올라갔다. 그 높은 산을 둘러싸고 계속해서 집이 나왔다. 교통도 불편한데 평지를 놔두고 왜 필리핀 사람들은 산에 들어가 군데군데 집을 짓고 살고 있는지 선대 조상들부터 살았으니까 계속 살고 있겠지만 나로서는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가는 도중 산 중턱 어느 마을에서 우리를 바타드까지 안내할 아저씨 한 분이 우리가 탄 지프니에 탔다. 이상하게도 입술이 빨갰고 약간 술이 취하신 듯했는데 우리의 진행자님과 계속 이야기하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새들이란 산 정상에 도착했는데 그곳에 몰려있는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게 느껴졌다. 진행자님으로부터 이곳 사람들이 관광객이 찾아들면서 관광객들로부터 떨어지는 돈에 대해 바라고 있고, 구걸하는 아이들도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입술이 빨갰던 그분은 마약을 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TV에서 마약이나 독한 담배를 하는 아이들에 대해 나올 때 그 나라 사람들을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본 적이 있는데 그 현장을 지금 보게 된 것이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다 달러로 보인다고 했던가! 그래서 더 그들의 눈빛이 무섭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눈빛이었을 뿐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타드 마을로 가기 위한 산행을 시작했다. 아주 높은 곳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살아서 그런지 길이 나 있었고 다행히 내리막길이었다. 바타드 마을에서 계속 걸어야 했던 험한 길에 비하면 잘 놓아진 등산로였다. 두 시간 정도를 걸어 내려와 바타드의 사이먼 산장에 도착하자 자료집에서 보았던 원형극장의 거대한 계단식 논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놀라움은 몇 시간을 지프니를 타고 덜컹거리는 산을 올라 다시 두 시간 정도를 걸어가는 수고를 한 대가로도 한참 부족한 필리핀의 선물이었다.

   진행자님이 마약을 해서 입술이 빨갰던 아저씨와 대화하며 고민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진행자님이 이번 캠프를 위해 이곳을 다섯 번이나 방문하여 준비를 하고 약속을 잡았는데, 이제 와서 우리가 복원작업을 하기로 일정을 잡은 내일은 모두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이어서 논둑 보수 작업을 하기로 했던 것을 다음날로 일정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캠프 안내 자료에서 공지했던 것처럼 이곳의 상황은 늘 가변적이라 일정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의 실제를 알 수 있었다.

 

 

8. 다섯째 날, 마을주민들을 만나다.


   결국, 우리는 다섯째 날 일정에 없었던 마을 주민과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머문 산장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정말 좁고 험한 것을 더해서 위험할 정도였다. 특히 올라올 때는 각도 높은 계단식의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야 해서 지금도 그 길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오르막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힘든 행군과 같은 그 길을 그곳의 아이들은 매일 올라서 학교를 가야하고, 마을 주민들에게는 일상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 우리에게는 더 도움이 된 것 같다. 마을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마을이 관광화되면서 실제로 그들이 처한 사항을 알게 되었다.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좋은 점은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게 되고, 가끔은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주기도 하고, 어떤 이는 농사일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산하는 물품과 기념품들을 사 가므로 경제적인 면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일반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관광객들로부터 받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구걸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이들은 이것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줄 알았던 나의 편견과는 달리 그것을 단점으로 여기고 또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또한 이 말을 듣자마자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는데 관광객들이 올 때 논둑을 밟아 망가뜨려서 보수 작업을 하느라 더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편견 속에 그들을 가둬놓고 대한 내가 부끄러웠고, 필리핀 사람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 어떠한지 학교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되었는데 보통 군인이나 경찰같이 보기에 멋있는 직업을 갖기를 바라고, 더 크면 의사나 다른 더 다양한 직종을 원한다고 했다. 초등학교는 멀긴 해도 걸어서 다닐 정도지만 고등학교는 워낙 멀어서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의 보조로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하고 주말에 집에 온다고 한다.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거나 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반 정도가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이 학교 선생님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진행자님의 말에 의하면 선생님이 잘못 알고 계신 것이라 한다. 학교 선생님이 정말로 그곳 아이들의 실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선생님으로서 희망적으로 대답을 했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외부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말을 한 것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는 학비를 내줄만한 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고, 그로 인해 직업의 선택권은 더욱 좁아서 많은 아이들이 지프니나 트라이시클 기사가 되는 등의 현실에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준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숙집이나 자취의 개념이 아니라 한다. 필리핀은 친척이나 친족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유연하고 가깝게 지내고 있어서 학교에서 가까운 친척 집에서 지내며 학교를 다닌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친척 집에서 집안의 궂은일을 다하며 지낸다.

   오후에는 탑피아 폭포에 다녀왔는데 여기 또한 가는 길은 정말 힘든 길이었고, 가는 중간중간 관광객을 맞이하는 아주 조그마한 상점들이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계단식 논이 왜 황폐해져 가는지를 이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산장으로 오는데 그 험하고 좁은 길을 정말 작은 아이가 허름한 옷차림으로 물통을 지고 우리를 비켜주려 한쪽에 쭈그리고 앉은 모습을 보았을 때는 너무 안타까웠다.

   저녁에는 캠프에서 가장 기대했던 이푸가오 주술사 ‘뭄바키’들의 축복과 행복을 빌어주는 전통 축제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TV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던 그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이다. 돼지를 눈앞에서 죽이고 주술을 외우고 돼지 간을 꺼내어 점을 쳤다. 의식이 끝나고 마을 아이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우리를 위해 준비한 전통춤을 보았다. 우리 또한 미흡했지만 답례로 준비한 ‘노바디’ 춤을 보여주며 서로의 문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의 전통음악에 맞추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는 축제가 벌어졌다. 의식에 바쳐진 돼지가 이푸가오 농민들의 솜씨로 잘 구워지고 그곳에서는 먹기 힘들다는 우리나라의 찹쌀로 지은 것 같은 밥이 준비되었다.

   그런데 음식을 함께 먹은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과는 따로 먹게 되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손님이 음식을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없는 살림인데도 곧 내야 하는 아이의 학비까지 다 털어서 손님에게 대접을 한다고 한다. 어떤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필리핀 사람들의 관습이었다.

   축제는 즐거웠지만 여기에서 안타까운 사실은 이제 이 전통의식이나 축제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는 일 년에 서른 번 정도 마을의 안녕을 비는 의식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요즘 현실에서는 돈이 없어서 그러지 못하고 있고, 이렇게 관광객들이 와서 전통의식을 보고자 돈을 지원해야지만 의식을 치를 수 있는 실정이라 한다. 또한 지금의 주술사 ‘뭄바키’들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어 이분들의 대가 끊기면 사라지게 될 전통의식이라는 것이다. 주술의 대를 이으려면 여러 번의 이 같은 전통의식을 경험해 보아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현실이란 것이 더욱 안타까웠다.

   축제가 끝난 뒤, 우리는 사이먼 산장에 남기고 갈 공정무역에 대한 포스터를 구상하고 만들었다. 포스터 내용은 커피가 ‘스타벅스’나 ‘네슬레’ 같은 커피 브랜드 회사를 거쳐 오는데, 소비자가 지불하는 금액에 비해 원산지에서 생산하는 원두의 가격과 커피를 따는 일을 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1%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캠프를 통해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에 대해 알았고, YMCA에서 하고 있는 동티모르 커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에서 직접 생산자와 직거래를 하는 것과, 농협에서 하고 있는 직거래 장터가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에서 안마를 시각장애인들이, 호떡 장사를 농아인들이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우선권을 주는 것처럼 필리핀의 정부도 힘이 필요하다.

   또한 필리핀은 임금이 너무 작다. 일한 노동의 대가가 너무 작은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노동운동과 조합이 필요하다. 그리고 생각해볼 것이 필리핀이나 중국, 베트남 등의 저임금 노동력 덕택으로 선진국들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복원 사업을 통해서 계단식 논이 복구가 되고, 농민들이 여기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게 되고, 관광화로 인한 피해가 줄어드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곳도 우리나라가 비록 이촌향도 현상이 늘어나고 버려지는 논이 많아졌지만 국가의 경제성장과 국민들의 삶의 질도 점점 향상된 것처럼 다른 시각에서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전통을 버린다고 하기보다는 낡은 것은 버리고, 무조건 새로운 것을 배제하는 것보다는 좋은 것은 새롭게 받아들여 잘 교합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도 계속 노력을 하고 있겠지만 필리핀을 바라보는 여러 단체에서는 이 나라에 대하여 정부가 힘이 생길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짧은 소견이다.

 

 


9. 여섯째 날, 돌 벽 쌓는 이푸가오 농민들

 

   바타드에서의 캠프 여섯째 날에는 어제에서 미뤄진 계단식 논 돌 벽 보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푸가오 농민들과 함께 논의 잡초제거와 논둑을 다시 만들어 보았고, 논 돌 벽 쌓는 일도 보게 되었는데 돌을 쌓는다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기술과 위험성도 더해지는 일이었다. 이 많은 돌 벽을 어느 천 년에 쌓았는지 외계인의 작품이 아니고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며 다시금 놀라웠다. 그러나 이곳의 농민들이 직접 돌 벽을 쌓는 것을 보고 사람의 작품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의 진행자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여기서 앞에서 언급하겠다던 필리핀 사람들의 관습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계단식 논을 힘들게 쌓는 것을 보고, 지원 단체에서 기계를 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그 기계를 팔아서 팔은 돈으로 얼마 동안 마을의 잔치를 했다고 한다. 기계가 있어도 효율적으로 별로 도움이 안 되었기 때문이란다. 그나저나 마을 잔치하는데 그 돈을 다 썼다니! 필리핀 사람들은 저축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한다. 은행에 저축하는 것에 대한 교육도 한 적이 있었으나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다 써버리는 습관이 있고, 집에 손님이 찾아오거나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아이들의 학비를 위해 모아 놓은 돈도 빼내서 다 써버리고 결국은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관습을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은 것 같다. 필리핀 사람들은 정말 순수하고 낙천적이며 교육열도 비교적 높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국가 경제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저축에 대한 교육이 전해지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국가의 제도적인 협조와 좋지 않은 관습만 고쳐진다면 필리핀에는 대단한 국민성이 있으므로 필리핀의 미래가 밝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보고 싶다.


10. 돌아오는 날

 

   바타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새들로 올라가 10시간의 냉방 버스를 타고 마닐라의 아시안 지부로 돌아왔다. 마지막 일곱째 날은 자유여행이었다. 우리나라의 오토바이 같은 것을 개조하여 4명 정도 타고 다닐 수 있도록 한 트라이시클이라는 운송수단과 버스, 지상철을 타는 등 필리핀의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서 마닐라의 교통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 때 지어진 성곽 인트라무로스를 둘러보았고, 안에 들어가 보았던 성당처럼 아직까지도 건물들이 그 쓰임 그대로 현존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모두 없애고 있는 것과는 다른 그들의 민족성을 알게 되었다.


   이번 캠프를 통해 진행자님이 과연 우리에게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 궁금했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을 물어보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겨우 일주일을 둘러보고 이 필리핀이란 나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없는 짧은 지식으로 결론부터 알기를 원했던 것 같다. 나는 이번 캠프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대해 알았고, 아직까지는 복원 사업에 대해 제대로 기여를 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계단식 논 복원 사업의 필요성과 현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필리핀이란 나라의 독특한 문화성과 그 나라 사람들의 매력에 대해 알고 왔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야 할지 다시금 정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 이런 공정여행 캠프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캠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후속 모임 활동들이 이 캠프의 목적 달성을 성취하는데 큰 요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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